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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5월의 책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제목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지은이

설민석

출간일

2016

책정보

504페이지

평점

★★★★★

 

#프롤로그

총 2,077책, 하루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 걸린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 한 권의 두께가 1.7cm인데, 조선왕조실록의 모든 책을 쌓아 올리면 아파트 12층 높이가 된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써온 일기를 합친다해도...(어디로 갔더라...^^;) 태조부터 순종까지의 자료..실록의 중립성을 위해 임금에게 조차 보여주지 않았다는, 국가기밀문서..한중록과 함께 설민석이라서 집어든 책..읽는 동안 설민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선왕조실록 보관 장소

 

#목차

프롤로그 | 쉽고 재미있는 역사, 설민석이 함께합니다·4

조선왕조실록이란 | 임금조차 볼 수 없었던, 가장 내밀한 기록·13

조선건국 이전 | 새로운 세상으로의 길·25

 

【 제1대 태조 】

이빨 빠진 호랑이. 57세, 최고령의 나이로 왕이 되다·41

- 개국공신 파트너 정도전, 재상 중심의 세상을 꿈꾸다

- 태조는 왜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선택했을까?

- 아버지 이성계 VS 아들 이방원

 

【 제2대 정종 】

무늬만 호랑이. 유약한 왕? NO! 처세의 달인!·63

- 왜, 정종은 개경으로 다시 수도를 옮겼을까?

- 동생 이방원(태종)을 ‘왕세자’로 선언하다

- 이방원(태종)도 부러워한 정종의 유유자적한 말년

 

【 제3대 태종 】

진짜 호랑이. 조선 유일! 과거에 합격한 임금? 왕권을 강화하다!·77

- 피로 잡은 왕좌, 참된 왕권을 선보이다

- 자발적인 의지로 왕위에서 내려온 유일한 임금

 

【 제4대 세종 】

위대한 호랑이.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임금·101

- 노력하는 천재, 세종!

- 행복한 백성들 뒤에는 뼈 빠지게 고생하는 신하들이 있었다?!

- 세종의 며느리가 동성애자였다니…

 

【 제5대 문종 】

피곤한 호랑이. 세자만 30년, 아버지 세종을 쏙 닮은 임금·139

- 문종(文宗)은 사실 무종(武宗)이어야 했다?!

- 준비된 임금 문종,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

 

【 제6대 단종 】

어린 호랑이. 15세에 상왕이 된 외로운 소년 군주·151

- 단종이 고명대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수양대군, 조카인 어린 왕에게 칼을 겨누다!

 

【 제7대 세조 】

무서운 호랑이. 피로써 이룬 세조의 ‘왕권 강화’·165

- 모사꾼 한명회,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살생부를 만들다

- 형제와 조카를 죽이고 이룩한 왕권 강화

- 세조의 아내와 술! 그리고 불교 사랑

 

【 제8대 예종 】

단명한 호랑이. 12세에 아들을 낳은 임금·187

- 아버지 세조처럼 왕권강화를 꿈꿨던 임금

- 재위 1년 만의 갑작스러운 죽음, 예종을 죽게 한 병은?

 

【 제9대 성종 】

모범생 호랑이. 조선 최고의 모범 임금·197

- 왕위 계승 서열 3위, 장인 한명회의 힘으로 왕이 되다

- 조선 고유의 법전, 경국대전을 완성하다

- 왕으로서는 100점! 남편으로서는 0점!이었던 성종

 

【 제10대 연산군 】

미친 호랑이. 조선 최고의 폭군·215

-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을 알고도 복수의 칼날을 숨기다

- 신하들의 입을 막고, 자신의 귀를 닫은 연산군

- 천 명의 기생과 ‘흥청망청’했던 임금

 

【 제11대 중종 】

변덕쟁이 호랑이. 조광조를 등용하고 버린 임금·233

- 임금도 읽어야 했던 초등 교과서 〈소학〉

- 중종의 남자, 조광조! 중종에게 버림을 받다

 

【 제12대 인종 】

9개월만 호랑이. 1년도 채우지 못한 조선 최단기 임금·251

- 3세 때부터 책을 줄줄 읽었던 신동

- 거식증에 걸린 인종이 단식을 한 이유는?

 

【 제13대 명종 】

엄마가 호랑이. 어머니의 그늘에 가린 존재감 없는 임금·263

- 임금 위의 여왕, 문정왕후! 대규모 숙청을 일으키다

- 이제 도저히 못 참겠다, 임꺽정의 난!

 

【 제14대 선조 】

도망간 고양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277

- 조선 최초의 방계 출신 임금, 선조

-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질 수밖에 없었던 3가지 이유

 

【 제15대 광해군 】

억울한 호랑이. 백성을 사랑한 전쟁의 영웅·303

-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이유 있는 양다리

-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광해군의 최후

 

【 제16대 인조 】

무릎 꿇은 호랑이. 오랑캐에게 사죄한 임금·321

- 친명배금이 일으킨 2차례의 전쟁

- 인조 맏아들 소현세자, 의문의 죽음 속 진실은?

 

【 제17대 효종 】

와신상담 호랑이. 북벌로 아버지의 치욕을 씻으려 했던 임금·337

-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북벌을 꿈꾸다

-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을 붙잡은 조선의 사정

 

【 제18대 현종 】

힘없는 호랑이. 조선 최고의 논쟁, 예송논쟁의 중심에 선 임금·351

- 의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 휘말린 현종

- 시대의 로맨티시스트? 부인이 단 한 명뿐인 조선의 왕

 

【 제19대 숙종 】

금수저 호랑이. 장자 프리미엄의 끝판왕·359

- 소년 군주 숙종, 정치 9단 송시열을 누르다

- 3차례의 환국으로 숙종이 얻은 왕권강화

- 실록이 인정한 조선 최고의 미녀, 장희빈

 

【 제20대 경종 】

병약한 호랑이. 장희빈의 아들로 태어난 비운의 임금·379

- 힘이 없는 임금의 험난한 왕위 지키기

- 동생 연잉군(영조)이 올린 게장과 감, 그리고 경종의 죽음

 

【 제21대 영조 】

최장수 호랑이. 조선 최초의 천민 출신 임금·389

- 영조 曰, “나는 형님을 독살하지 않았다! 이것들아!”

- 탕평비를 세우며 조선의 중흥을 이끈 정책들은?

-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여 버린 비운의 부정(父情)

 

【 제22대 정조 】

완벽한 호랑이. 백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힘쓴 임금·417

- 역적의 아들, 애민군주가 되다

- 지덕체를 모두 갖춘 임금, 정조

-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며 수원 화성을 축성하다

 

【 제23대 순조 】

무능한 호랑이. 수렴청정에 휘둘린 허수아비 임금·445

- 순조의 증조할머니 정순왕후, 정치적 야욕을 드러내다

- 정약용이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 된 까닭

- 세도정치의 시작은 정조 때문이었다?!

 

【 제24대 헌종 】

최연소 호랑이. 8세에 즉위한 어린 임금·457

- 위기와 혼란의 시대

-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옆집감시제도’

 

【 제25대 철종 】

신데렐라 호랑이. 조선의 꼭두각시 임금·4 63

- 촌수까지 고쳐가며 강화도 도령을 왕으로 만들다

- 죽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걷었던 부패한 시대

 

【 제26대 고종 대한제국 제1대 황제 】

비운의 호랑이. 변혁과 침략의 시대에 서 있던 임금·734

-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10년간 섭정

- 개항 이후, 근대 변화의 바람이 불다

- 흔들리는 조선, 국호를 고쳐 새로운 변화를 꾀하지만…

 

【 제27대 순종 대한제국 제2대 황제 】

나라 뺏긴 고양이. 병약했던 마지막 임금·847

- 독차(毒茶)를 마신 조선의 마지막 왕자

- 주인공이 참석하지 않은 황제 즉위식

 

에필로그 | 역사를 아는 당신, 현재가 다르게 보입니다·492

부록 1 | 조선을 배경으로 한 영화 목록·495

부록 2 |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목록·497

부록 3 | 한눈으로 보는 인포그래픽·501

조선왕조실록 설민석 북트레일러

#느낀점

기억이 없다..학창시절에 이렇게도 재밌는 조선왕들에 대한 수업이 있었었는지...시험만을 위한 하나하나의 사건에만 집중하다 보니 역시 남는 건 하나도 없..다. 27명 왕의 성씨가 모두 이씨라는 것까지ㅜㅜ...영조의 재위기간은 52년, 숙종은 46년...엄청나다. 정말 성군이 아닌 폭군이 그 긴긴 세월을 왕으로 독재를 한다면...국민이 직접 왕을 뽑을 수가 없었던 그 시절 내가 평민으로 아니 제일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야만 했다면...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서 500여년의 조선을 훑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마구 감사하게 된다^^.

#point

-밥상에서 잘 익은 생선 몸통은 모두 장남 차지였다는 적장자 중심의 종통인식은 중국 주나라(기원전 11세기경~기원전 256년)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갓집도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조선의 전반적인 모습을 디자인한 정도전은 왕의 됨됨이보다는 왕을 성군으로 만들 수 있는 국가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인물이었다. 신권중심의 세상을 꿈꿨던 정도전은 폭군이 나와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시스템, 매뉴얼을 만들었다

조선을 디자인 한 정도전

-정도전이 강화한 경연제도: 왕이 신하와 함께 학문을 토론하고 현실 정치를 의논하는 것인데 사실상 왕을 공부시키는 것이다.

왕의 24시

-보통 나라를 세운 왕을 ‘태조’라 하고, 이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을 왕을 ‘태종’, 제도와 문물을 완성시킨 왕을 ‘성종’이라고 한다. 즉, 나라를 세운 창업군주는 ‘조’를 쓸 수 있고, 이후의 왕들은 태조의 종통을 계승한 것이므로 ‘종’이라고 쓰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종통을 계승하지 않고 왕위 계승권 밖에 있던 자가 임금이 되면 ‘조’를 쓴다(세조, 인조)

-정종은 재위시절 이방원의 눈치를 보며 정치에 욕심이 없음을 드러냈다

-조선 27명의 왕 중에서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브레인 중의 브레인은 이방원

-임금이 인지도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태종실록 25권, 13년(1413) 2월5일] 거북선이 고려말이나 태종 때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또한 이미 족하다[태종실록 36권, 18년(1418) 8월8일] 조선 최고의 카리스마 태종은 세종에게 자발적으로 왕의 자리를 양위하고 상왕이 된다

-소통의 왕 세종은 약자의 편에서 노비에게도 100일의 출산 휴가를 주었다(남자 노비에게도 30일 휴가를 줌)

-한글을 창조한 세종은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등의 책을 출판하였고, 훈민정음 해설서를 만들어 보급하도록 하였다.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 만에 깨우치고, 비록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까지 담아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을 기념하여 1973년부터 세종을 만 원권에 실었다. 조선왕실의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그림

세종과 일월오봉도 그리고 천상열차분야지도

-세종은 예와 악을 통해 개인의 도덕성을 회복하고자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만들었다(임금/신하, 아버지/자식, 남편/아내에게 귀감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이야기를 뽑아 그림과 함께 만든 책)

-유학에서는 음악에 예가 있다고 보았고, 음률이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아, 음악을 단순히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이 아닌, 예를 나타내는 학문이자 수련으로 보아 세종과 성종은 음악으로 백성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폐비윤씨는 성품이 본래 흉악하고 위험하여서 행실에 패역함이 많았다. 지난날 궁중에 있을 적에 포악함이 날로 심해져서 이미 삼전에 공순하지 못하였고, 또한 과인에게 흉악한 짓을 함부로 하였다. 그래서 과인을 경멸하여 노예와 같이 대우하여, 심지어는 발자취까지도 없애버리겠다고 말하였으나, 이러한 것은 다만 자질구레한 일들이므로 더 말할 것도 없다[성종실록 144권, 13년(1482) 8월 16일]

-친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연산군은 천명의 기생과 향락을 즐기며 폭군이 되었다

연산군과 기생들

-지금 수재와 한재가 잇달아서 백성이 항업을 잃은데다가 수령이 탐학스럽고 부역이 번거로우니 백성들이 도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금을 박하게 하고 요역을 가볍게 하는 데는 힘쓰지 아니하고 포획해서 죽여 없애는 것을 급하게 여겼으니 백성을 그물질하는 데에 가깝지 않겠는가. 애석하게도 백성의 항업을 마련해 주는 법을 건의하는 자가 없다[명종실록 23권, 12년(1557) 6월 8일]. 길에서 자라는 풀도 돈 주고 사야 했던 상황. 임꺽정의 난

-비겁한 선조는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해 한양을 떠나 개성, 평양, 의주로 옮기며 점점 북쪽으로 몸을 피신하였다. 그 사이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23전 23승으로 백성들의 영웅이 되었다

-병자호란에서 패한 인조는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며 총 9번 절하였다. 삼전도의 굴욕사건. 그 당시 우리나라 여자들은 인질로 끌려가서 청나라 사람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다. 다시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라고 불렀으며 이때부터 행실이 부정한 여성을 지칭하는 욕으로 변질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굴욕의 인조

-조선 유일, 단 한 명의 아내를 맞이한 현종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 철을 잊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니, 제철 가면 어이 놀까. 숙종, 인현왕후, 장희빈 스캔들

숙종과 여인들

-이복동생 영조가 올린 게장과 감을 먹고 죽은 경종.

-양반가 부녀자들의 가체를 금하고 속칭 족두리로 대신하도록 하였다. 가체의 제도는 고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곧 몽고의 제도이다. 이때 사대부가의 사치가 날로 성하여, 부인이 한 번 가체를 하는 데 몇 백 금을 썼다. 그리고 갈수록 서로 자랑하여 높고 큰 것을 숭상하기에 힘썼으므로, 임금이 금지시킨 것이다[영조실록 87권, 32년(1756) 1월 16일]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슬픔을 생각하다..

-정조는 세존 시절부터 일기를 매일 써 훗날 <일성록>을 만들 만큼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매우 좋아했다. 일성록(나는 매일 반성한다), 논어에 나온 ‘나는 매일 세 가지 일을 반성한다’에 감명 받아서 일성록을 쓰기 시작했다

-순조대부터 천주교 신자들을 엄하게 벌하고, 대대적인 숙청과 귀양을 단행했다. 헌종 시기에도 만찬가지였는데 그 대표적인 모습이 ‘오가작통(다섯 집에서 천주교 신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나머지 네 집도 엄하게 벌 하는 것)’의 시행이다. 이 때문에 조선 사회는 이웃 간의 정이나 연대의식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삭막한 사회가 되었다

-오랑캐들이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고종실록 8권, 8년(1871) 4월 25일].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이 즉위하자 10년 동안 섭정을 하며, 안으로는 왕권강화를 밖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단행하였다

-을미사변(1895)으로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 의해 피살되자, 고종은 러시아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결국 한 나라의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러 지내기 시작하였다. 1년 뒤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흔들리는 조선의 국운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며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국이라 선포하였다. 하지만 1907년 일본에 의해 강제퇴위를 당했다.

-비운의 마지막 군주 순종. 1910년 8월 29일 조선의 주권을 아예 일본이 차지하는 한일병합조약을 발표하며 500여년 동안 유지되어 온 조선왕조는 경술국치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일병합조약 이후 순종은 창덕궁에 거주하였다. 그의 이복동생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인과 강제 결혼을 하였다

호랑이로 표현한 조선의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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